디지털 장례. 추모. 유언장. 메타버스.

디지털 장례, 법적으로 가능한가?

rich-story12345 2025. 7. 2. 21:03

장례의 디지털 전환, 법은 따라오고 있는가?

장례는 인간의 죽음을 기리고 추모하는 매우 전통적이며 엄숙한 의례다. 오랜 시간 동안 장례는 종교, 문화, 가족 중심의 방식으로 치러져 왔으며, 법적으로도 정해진 절차와 형식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과 팬데믹 상황은 장례의 형식을 빠르게 바꾸어 놓았다. 특히 ‘디지털 장례’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고인을 기리는 방식은 오프라인 공간을 넘어 온라인과 가상현실로 확장되고 있다.

 

 

 

디지털 장례의 법적인 허용

 

 

디지털 장례는 장례식의 핵심 요소들을 온라인 플랫폼이나 메타버스 같은 디지털 공간에 구현한 장례 방식이다. 실시간 장례식 중계, 온라인 추모관, 사이버 분묘, AI 고인 챗봇, 디지털 헌화 기능 등은 디지털 장례의 대표적 예시로 손꼽힌다. 이러한 변화는 장례문화를 보다 유연하고 접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바로 디지털 장례가 법적으로 허용되는가? 하는 문제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전통 장례와 관련된 법률은 존재하지만, 디지털 장례에 대해서는 명확한 법적 정의나 기준이 없는 상태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장례의 유형과 구성, 관련 법적 쟁점, 실제 인정되는 범위, 그리고 앞으로의 제도화 가능성까지 단계적으로 분석한다. 법이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새로운 장례문화를 둘러싼 혼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디지털 장례의 구성과 확산 배경

디지털 장례는 물리적 장례식을 완전히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목적으로 등장한 장례문화의 디지털 버전이다. 이 장례 형식은 고인의 추모를 위한 모든 요소를 가상공간에 구현하며, 주요 구성은 다음과 같다.

  • 온라인 장례식 중계: 장례식을 실시간으로 방송하여 먼 거리에서도 조문객이 참여할 수 있게 함
  • 가상 추모관/사이버 분묘: 고인의 생전 기록과 사진, 영상 등을 업로드하고 조문과 헌화를 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
  • 메타버스 기반 장례식장: 3D 가상공간에서 유족과 지인이 아바타로 참석해 장례를 치르는 구조
  • AI 챗봇 및 고인 음성 복원: 고인의 언어와 목소리를 AI로 복원하여 유족이 고인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
  • 디지털 유언장, 추모 메시지 예약 발송 기능

이러한 디지털 장례의 확산은 단순히 기술의 발전 때문만이 아니다. 특히 코로나19는 장례식장 집합 제한과 비대면 장례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고, 이로 인해 온라인 추모 시스템은 단기간에 대중화되었다. 더불어 MZ세대를 중심으로 사후 세계에 대한 표현 방식이 변화하면서, 장례 또한 개인화되고 인터랙티브한 방식을 지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도에 비해 관련 제도와 법률은 여전히 과거의 틀 안에 머물러 있다. 현실은 이미 디지털 장례를 활용하고 있지만, 법적 기반 없이 서비스가 운영되다 보니 그 정당성이나 법적 보호 수준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다.

 

 

한국 내 디지털 장례 관련 법 제도의 현주소

한국에서 장례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화장, 매장, 개장, 봉안 등 명확하게 정의된 절차로 구성된다. 해당 법률은 시신 처리 방식과 묘지 운영, 장례식장 운영 기준 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디지털 장례에 대한 직접적인 규정은 없다. 즉, 현행법률상 디지털 장례는 공식적인 장례 절차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인의 시신을 메타버스 공간에 ‘상징적으로 묻는’ 행위는 법적 매장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사이버 분묘는 실제 묘지로 등록되지 않으며, 디지털 추모관은 장례 시설로 인정되지 않는다. 또한, 장례 후 행정 절차(사망신고, 화장증명서 발급 등)는 여전히 오프라인 장례를 기준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디지털 장례만으로는 해당 절차를 완료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 장례가 불법인 것은 아니다. 법률에 의한 강제적인 규제가 있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많은 기업과 장례식장이 보조 수단으로 온라인 조문, 중계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다만, 디지털 장례가 단독으로 법적 장례 절차를 대신할 수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또한 고인의 정보를 디지털화하여 보관하거나, 사망 후에도 AI로 구현된 고인을 상호작용 대상으로 만드는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 저작권법, 사후 인격권 보호 문제 등 복잡한 법적 쟁점을 수반한다.

 

 

디지털 장례와 관련된 주요 법적 쟁점

디지털 장례는 기존의 장례와는 매우 다른 특성을 가지므로, 기존 법률 체계에 여러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쟁점들이 존재한다.

개인정보 보호 및 사망자 정보 사용

사망자의 정보는 생전과 사후를 기준으로 보호 방식이 달라진다. 사망자는 개인정보 보호법상 보호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고인의 정보가 유출되더라도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렵다. 그러나 고인의 사진, 음성, 영상 등을 AI로 복원하거나 SNS 계정을 운영하는 것은 사후 인격권 침해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AI 고인 복원과 윤리 문제

AI 기술을 통해 고인의 말투와 음성을 복원하는 행위는 새로운 형태의 인격 구현으로 간주될 수 있다. 유족이 이를 원하더라도 고인의 사전 동의가 없다면 법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재 한국에는 이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으며, 법적 분쟁 가능성도 있다.

사이버 묘지와 디지털 자산의 상속 문제

고인의 NFT 기반 분묘, 메타버스 공간, 클라우드 유산 등은 새로운 자산 형태다. 하지만 현행 민법이나 상속법에는 이러한 디지털 유산에 대한 규정이 미비하다. 유족이 고인의 디지털 묘지를 상속하거나 이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쟁점들은 단지 법률의 미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족과 서비스 제공자 모두에게 심각한 법적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장례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정의와 이용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디지털 장례의 제도화 가능성과 향후 방향

디지털 장례가 법적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현행 장례 관련 법률의 개정 또는 새로운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디지털 장례를 기존 장례 절차의 보완 수단으로 제도화하고, 특정 조건에서 독립된 장례 방식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리적 장례가 불가능한 상황(감염병, 해외 체류 등)에서 디지털 장례를 법적 예외로 인정하고, 행정상 필요한 절차를 별도로 마련하는 식이다.

해외에서는 미국 일부 주에서 온라인 장례와 관련된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디지털 유언장을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점차 법 제도가 변화하고 있다. 일본도 디지털 묘지 운영에 대한 자율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 시민단체와 종교계가 공동 운영하는 방식으로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장례문화의 다양성 확대와 고령화 사회 대응 차원에서 디지털 장례 제도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고인에 대한 사후 정보 보호, AI 기술의 윤리적 사용, 디지털 유산의 상속 구조 등을 포괄하는 통합적 법적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 법은 기술을 따라가야 한다. 디지털 장례는 이미 현실이 되었고, 남은 것은 그것을 법과 제도의 언어로 정당화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