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죽음 이후에도 그 사람이 남긴 소셜미디어 계정이 ‘살아 있는 것처럼’ 유지되는 풍경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에는 고인의 생전 모습과 글, 사진, 목소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이 계정들은 단지 과거의 기록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술이 결합하면서, 고인의 말투나 감정, 행동 패턴을 학습한 AI가 그 계정을 대신 운영하는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기일에 맞춰 추모 글을 올리거나, 유족의 메시지에 반응하고, 심지어 새로운 글을 생성하는 기능까지 실현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고인을 기억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죽은 사람이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정서적 불편함과 윤리적 의문이 함께 제기된다. 이 글에서는 고인의 계정을 AI가 관리하는 방식이 디지털 장례의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는 흐름을 살펴보고, 그 안에 내포된 프라이버시, 정체성, 윤리의 경계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인공지능이 관리하는 디지털 고인의 계정 운영 방식
AI가 고인의 SNS 계정을 대신 운영하는 시스템은 단순한 자동화 기능을 넘어, 고인의 개인성(personality)을 재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고인의 생전 게시글, 댓글 패턴, 언어 스타일, 자주 사용하는 이모지, 좋아요 누른 콘텐츠 등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사후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게시하는 구조가 등장하고 있다. 일부 서비스는 고인의 목소리와 말투, 억양을 딥러닝 모델로 복원해, 음성 메시지를 유족에게 전송하는 기능까지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계정을 유지한다’는 개념은 이제 단순히 계정 삭제를 막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존재가 사망 이후에도 ‘소통하는 존재’로 남는다는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유족에게 위로와 정서적 지지를 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고인의 말투로 기일 인사를 받는 경험은 감정적으로 위안을 줄 수 있으며, 기억을 공유하는 방식도 풍부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고인이 사망 이후에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은 현실과 죽음의 경계에 혼란을 줄 수 있고, 고인을 기억하는 방식이 기계적으로 재구성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고인의 동의 없는 계정 자동 운영의 윤리적 문제
사망자가 생전에 AI를 통한 계정 운영에 명시적으로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족이나 서비스 제공자가 일방적으로 이를 개시할 경우 개인의 인격권과 사후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법률문제를 넘어, 고인의 정체성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사회적 가치 판단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특히 문제는, 고인이 생전에 했던 말을 바탕으로 AI가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 낼 경우, 그 발언이 진정 고인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유족 간의 해석 차이도 문제를 심화시킨다. 한쪽은 고인의 계정을 통해 위안받고 싶어 하지만, 다른 한쪽은 사망자의 이름을 사용한 인공지능이 감정을 소비하거나 왜곡된 기억을 만들어낸다고 느낄 수 있다. 고인의 사후 계정을 어떤 방식으로 보존하고 관리할 것인지는 가족 전체의 합의가 필요하며, 플랫폼의 일방적인 서비스 제공은 갈등을 촉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AI 서비스의 책임 구조
현재 대부분의 SNS 플랫폼은 ‘기념 계정’ 전환 기능이나, ‘사망자 계정 관리자’ 지정을 통해 사후 계정 운영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이 결합하면서 기존 정책만으로는 처리할 수 없는 복합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AI가 자동 생성한 콘텐츠는 누구의 책임 아래 있는가? 만약 AI가 고인의 말투로 유족에게 감정적으로 충격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전송했다면, 플랫폼과 AI 제공자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이와 같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AI 기반 사후 계정 운영에 대한 별도의 사용자 동의 절차, 콘텐츠 생성의 범위 제한, 인간 모니터링 기능의 병행 등이 요구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이 ‘기억을 지속하는 도구’인지, 아니면 ‘인격을 대신하는 매개체’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술이 죽음을 완전히 ‘디지털화’해 버리는 순간, 장례와 추모의 본질은 무너질 수 있으며, 고인의 존재는 추억이 아닌 기능이 되어버릴 수 있다.
감정 설계와 AI 추모 기능의 균형 필요성
고인의 계정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정서적 설계’이다. AI가 아무리 정교하게 고인의 스타일을 흉내 낼 수 있다 해도, 그 결과물이 유족의 감정 흐름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면 그것은 실패한 기술이다. 따라서 AI 기반 추모 기능은 정보 중심 설계가 아니라 감정 중심 설계로 접근되어야 하며, 사용자가 AI를 통해 느끼는 정서적 경험이 기술보다 앞서야 한다. 예를 들어, AI가 특정 시점에 자동으로 메시지를 발송하더라도, 사용자가 이를 원할 때만 수신할 수 있도록 ‘감정 우선 인터페이스’를 구성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또한 고인의 계정에 생성되는 모든 AI 기반 콘텐츠에는 ‘AI 생성 콘텐츠’라는 명시적 표기와 설명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이는 유족이 감정적으로 혼란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고, AI가 고인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대신 표현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하게 해준다. 디지털 장례 기술이 고인을 기억하는 방식을 확장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 기억이 감정적으로 왜곡되거나 과도하게 기술에 의존하게 되는 것을 막는 섬세한 조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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