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장례 속 소외된 애도 – 비 접속자가 경험하는 감정의 단절
모두가 디지털에서 애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례문화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오프라인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아도 온라인 추모관에 글을 남기고, 고인의 SNS에 댓글을 남기며, 유튜브 추모 영상을 통해 애도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팬덤 문화에서도 디지털 애도는 활발하다. 실시간 스트리밍 장례식, 메타버스 헌화 서비스, AI 고인 챗봇까지 등장하며, 디지털은 죽음을 기억하는 또 다른 공간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디지털 기반의 추모 방식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애도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디지털 애도는 분명 새로운 표현의 통로지만, 동시에 또 다른 형태의 사회적 배제와 단절을 만들어내고 있다. 인터넷 접근성이 낮거나,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장애인, 정보 소외계층은 이러한 새로운 장례문화에서 점점 배제되고 있으며, 죽음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세대·계층·문화 간에 불균형해지고 있다. 이 글은 바로 그 ‘접속하지 못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디지털 애도 문화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디지털 장례문화의 확산과 감정의 비대면화
현대 장례는 빠르게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실시간 장례 중계와 온라인 헌화 서비스가 급속히 퍼졌고, 추모 영상 플랫폼, AI 기반의 고인 음성 복원 서비스, 디지털 추모 다이어리 등이 새로운 장례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유족들은 고인의 SNS 계정을 ‘추모 계정’으로 전환하거나, 디지털 유언장을 통해 고인의 뜻을 전달하기도 한다. 장례는 점차 물리적 행위가 아닌 디지털 감정의 수행 행위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감정을 디지털화하는 과정은 접속 가능한 사람들만을 위한 구조일 수 있다. 온라인에서 고인을 추모하려면 스마트폰, 고속 인터넷, 플랫폼 사용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요소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디지털 애도는 불가능하다. 즉, 기술 기반 애도 방식은 애초부터 전제 조건이 필요한 감정의 표현이며, 접근권이 제한된 사람들은 ‘애도할 수 있는 권리’조차 갖지 못한다. 장례는 공동체적 감정의 장이지만, 디지털화된 장례는 점차 감정을 계층화하고 있는 셈이다.
비 접속자의 현실 – 고령층, 장애인, 정보 소외계층
디지털 장례에 가장 많이 소외되는 계층은 고령층과 정보 접근성이 낮은 사람들이다. 특히 70세 이상 고령자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으며, 온라인 추모관의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 중 약 42%는 장례식의 디지털화에 부정적이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접근성 자체가 장벽이 되는 것이다.
장애인의 경우, 시각·청각 장애를 가진 이들은 기존 온라인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텍스트 기반의 추모 시스템이나 영상 기반 콘텐츠에 충분히 접근하지 못한다. 일부 플랫폼은 자막이나 음성 안내를 제공하지만, 대부분은 기술의 접근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또한 저소득층, 농어촌 거주민 등도 데이터 비용, 기기 보유율, 인터넷 연결 속도 등에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이러한 환경은 결국 ‘죽음을 슬퍼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차단하며, 애도의 권리조차 디지털 접근권과 동일시되는 불평등한 구조를 만들어낸다.
감정 불균형의 확산 – 디지털 장례가 만드는 사회적 간극
장례는 본래 공동체적 행위다. 가족, 지인, 이웃이 함께 모여 고인을 추모하며 서로의 슬픔을 나누는 과정은 애도와 회복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장례에서는 이 공동체적 감정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메타버스에서 헌화를 하거나, AI가 말하는 고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참여자에게 새로운 경험일 수 있으나, 이를 경험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정서적 소외감과 감정 격차만을 남긴다. 특히 고인을 직접 만나지 못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 채 온라인으로만 작별하게 되는 경우, 정서적 불완전함은 더욱 커진다.
게다가 디지털 장례 문화는 ‘표준화된 감정 표현’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추모 게시판에 짧은 댓글을 남기거나, 미리 설정된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표시하는 것이 애도의 전부가 될 때, 감정 표현은 기능적으로 단순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개별적 감정의 다양성을 억누르며, 특정 형식의 슬픔만을 인정하게 만든다. 디지털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 표준화에 조차 참여할 수 없고, 점점 더 자신의 애도가 ‘인정받지 못하는 감정’이 되는 이중적 배제를 경험하게 된다.
모두를 위한 디지털 애도
디지털 장례는 분명 새로운 시대의 애도 방식이다. 물리적 거리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고인을 기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이 장점은 접속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디지털 장례가 진정한 공동체적 장례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적 접근성은 물론 문화적·심리적 접근권까지 보장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고령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음성 기반 추모 시스템, 텍스트 대체 기술, 오프라인-온라인 연동 추모 공간 등 다양한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
정부와 지자체, 장례 업계, IT 기업이 협력해 디지털 애도 접근성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공공 플랫폼에서도 소외 계층을 위한 ‘쉬운 추모 도구’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자기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감정의 방식이 다양하게 존중받는 디지털 장례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이 디지털로 전환되는 이 시점에서, 애도의 권리를 가진 사람은 누구이고, 그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다시 물어야 할 때다. 그리고 그 간극을 좁히는 작업이야말로, 진정한 디지털 장례 문화가 완성되어 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